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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오브씹새끼

​락스


 

가난한 후쿠이 시골쥐에게 대도시의 삶이란 너무나 고달프다. 그 도시가 바다 건너 외국이라면 더더욱.

 

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좁은 골목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펼치자 동네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프린터기에서 뽑은 인쇄물도 아니고, 볼펜 똥이 군데군데 묻은 수제 작품이다. 암만 도시라 하더라도 최첨단 디지털 네오 테크놀로지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냥 네이버 지도에 찍어달라고 반항했다가 괜히 정강이나 차였다. 휴대폰이든 컴퓨터든 뭐든 흔적이 남으면 안 된다는 개소리는 덤이었다. 

 

종이에 얼굴을 처박고 이리저리 걸어보니 대충 와꾸가 그려졌다. 동서남북 방향을 홀로 터득하고는 약도에 표시된 곱표 중 가장 가까운 곳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집들이 개집들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구분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러나 이 짓도 시작한 지가 벌써 2년이다. 나름의 요령을 살려 첫 번째 우편함을 찾아냈다. 모자챙 아래 질질 흐르는 땀을 대충 닦아내고 가방을 앞으로 돌려 맸다. 지퍼를 열자 뽁뽁이로 튼튼하게 포장된 꾸러미들이 나타났다. 여기서 긴장 풀면 안 된다. 저번 주에 구공탄이 경찰에게 걸려 끌려갔다는 소문이 쫙 깔렸다.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고 쥐새끼 한 마리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꾸러미들 중 하나를 꺼내 우편함에 집어넣었다.

 

아직 지도에 남은 곱표가 수두룩빽빽했으므로 얼른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다시 가방 지퍼를 닫고 뒤돌았다. 오늘 안에 배달을 끝내지 못하면 박실장에게 얻어터진다. 가방에 남은 꾸러미 개수당 1분씩 처맞는 게 룰이었다. 박실장은 무에타이 유단자였기에 1분만 걸려도 작살이다. 

 

그때 바로 옆 담벼락에 치렁치렁 걸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살기 좋은 도시, 서울. 쾌적한 주거 환경, 높은 주거 만족도, 우수한 자연·문화·교통 인프라 어쩌고저쩌고. 그러나 내 약도에 그려진 곱표만 서른다섯 개다. 오늘 서울에 사는 서른다섯 명에게 일용할 마약을 베풀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렇게 살기 좋은 도시에 살면서 마약 배달을 해야 하는 삶이란... 너무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고 고백하기에는 솔직히 별로 부끄럽지 않다. 나는 코를 한 번 훌쩍이고 다음 곱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녀왔습니다.”

“어, 오징어 왔냐.”

 

배달을 다 끝내고 황제모텔 401호에 들어서자 눅눅한 땀냄새와 담배쩐내와 컵라면 냄새가 동시에 훅 끼쳤다. 당장 뒤돌아 도망가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그러나 일을 무사히 끝냈다는 보고를 해야 했기에 억지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왕뚜껑을 흡입하다 말고 날 맞이한 저 돼지의 이름은 강망치다. 강망치가 본명일 리는 없고 아마 별명일 거다. 강망치가 날 오징어라고 부른 이유는 당연히 외모 때문이 아니다. 외모에 대해 잘난 척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징어라는 이름은 나와 영영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오징어인 이유는 그냥 오징어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박실장은 던지기를 할 심부름꾼을 항상 10명씩 두고 굴렸다. 누군가 경찰에게 잡혀갔다가 다른 놈들 정보를 줄줄 읊을까 봐 절대 본명을 까게 두지 않았다. 대신에 차례대로 별명을 붙인다. 순서대로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칠면조 팔보채 구공탄 십자가였다. 하필 다섯 번째 오징어 역할의 심부름꾼이 배달하다 칼부림에 휘말려 목이 따여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빈자리를 메꾸려고 박실장은 나를 채용했다. 내가 가난한 시골쥐라는 점이 두 번째로 마음에 들었고, 첫 번째로 마음에 든 건 내가 불법체류자라는 점이라는 말을 떠들어대면서.

 

형은 이렇게 생겼으면서 왜 이따구로 살고 있어요?

 

이렇게와 이따구의 미묘한 차이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경찰에게 끌려가기 전 구공탄이 내게 한 말이다. 그때는 황제모텔이 아니라 프린스모텔에 묵고 있을 시절이다. 여섯이서 머리 맞대고 제육 도시락을 퍼먹고 있는데 돈 모아서 얼굴 뜯어 고치고 새 인생 살 거라는 칠면조의 한탄이 시작되었다. 내가 보기에 칠면조가 손대야 할 곳은 얼굴뿐만이 아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 새끼는 여자 때문에 팔자 꼬인 케이스지.

 

나 대신 대꾸한 십자가가 킬킬대며 씨부렸다.

 

여친이 돈 갖고 날랐다잖아.

 

갑자기 목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들어 급하게 옆에 있는 생수를 들이켰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회식 비스무리한 자리에 끌려가 소주를 진탕 퍼마신 적 있다. 술에 꼴아 별별 소리를 다 했는데 그때 튀어나온 나의 가슴 아픈 과거였다. 너구리굴 뺨칠 정도로 담배 연기 자욱한 노래방 룸 안. 질질 짜면서 마이크 붙잡고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이렇게 개좆같다고... 옆에 있던 구공탄이 눈 감고 들으면 진짜 한국인이 부르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한국으로 튀었대. 여친 찾으러 바다 건너 왔다는 거 아니겠냐.

대박. 존나 사랑했나보다.

야, 이게 사랑으로 설명될 꼬라지냐? 잡아다 족치려고 여기까지 온 거지.

 

구공탄 말도 맞고 십자가 말도 맞다. 애인을 존나 사랑했다. 어느 정도냐면 존나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사랑했다. 걔가 주는 잔에 술이 아니라 독이 담겨 있더라도 기꺼이 눈 감고 마셔줄 정도로 사랑했다. 그러니까 차라리 나를 죽이고 도망갈 것이지, 나를 죽이지도 않고 돈 칠백만 엔을 홀랑 갖고 튀어서 내가 너찾아서씨발바다건너한국까지와서좆뺑이를치고있잖아...

 

“야, 왜 안 들어오고 거기 서서 씩씩대고 있어?”

 

과거 회상을 하다 보니 열이 뻗쳐서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은 프린스모텔이 아닌 황제모텔이다. 그때 나를 두고 로맨티스트라고 했던 구공탄은 온데간데없고 십자가는 저기 구석에서 강망치랑 마주 보고 앉아 제육 도시락이 아니라 왕뚜껑을 흡입하고 있다. 얌전히 그쪽으로 걸어가 내 몫의 왕뚜껑을 챙겼다.

 

“너구리는?”

“아직 안 왔어.”

“오늘도 일 다 못 끝내는 거 아니야?”

 

일머리가 그다지 좋지 못한 너구리는 매번 가방 안에 꾸러미를 몇 개씩 남겨 돌아왔다. 덕분에 늘 박실장에게 처맞느라 얼굴에 멍 자국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강망치가 요란하게 면치기를 하다 말고 얼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형님 기분이 영 별론데, 또 작살나겠구만.“

 

강망치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인간은 박실장뿐이었다. 나는 흘낏 눈치를 살피며 신경 쓰지 않는 척 물었다.

 

“박실장님이 왜요?“

“구공탄 이 새끼 사라진 것도 그렇고, 하여튼 일이 좀 있어.”

 

그러더니 나와 십자가에게 젓가락을 까딱대며 일렀다.

 

“너네도 좀 더 허리 납싹 굽히고 다니라고. 어? 형님 시키는 일에 토 달지 말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기분파인 박실장의 기분이 유난히 더 안 좋다니 큰일이었다. 당분간은 뭘 시키든지 닥치고 하는 수밖에 없겠다.

 

“오징어.”

 

...라고 다짐하기는 했지만.

 

“삽 들고 따라와.”

 

얼굴에 피 칠갑을 한 박실장이 살벌한 표정으로 내게 그 말을 지껄였을 때는 그냥 냅다 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는 몸뚱아리를 어떻게든 가라앉히고 입을 빠끔댔다. 그러나 결국 튀어나올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넵...”

 

박실장이 사람 하나 죽인 사이코패스 같은 몰골로 황제모텔 401호에 쳐들어온 건 자정이 넘었을 때였다. 박실장에게 보고를 마쳐야 퇴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심부름꾼들은 옹기종기 한 방에 모여 노가리나 까는 중이었다. 나는 집중해서 재방영 중인 드라마를 보는 중이었다. 사탄들의 학교에 루시퍼가 등장할 즘에 타이밍 좋게 문이 덜컹거렸다. 박실장은 원래도 얼굴이 반반한 데다 좀 극적인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등장이었다.

 

대체 뭔 짓을 하다 온 건지 얼굴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튄 건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 와꾸가 하도 강력해 처음엔 몰랐는데,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항상 차려입고 다니는 아르마니 정장도 온통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구겨진 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살벌한 꼬라지에 다들 할 말을 잃은 와중 박실장이 처음 꺼낸 말이 오징어, 삽 들고 따라와, 였다. 

 

왜 하필 나를? 그러나 억울한 눈을 했다간 무슨 사달이 날지 몰랐기에 최대한 온순한 표정을 지었다. 내 대답을 들은 박실장이 다시 등을 휙 돌려 걸어 나갔다. 강망치가 그 옆에 허겁지겁 붙었다. 형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소곤대는 소리가 앞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강망치가 늘 챙겨 다니는 골프 가방에서 삽을 꺼내 들고는 얼른 그 뒤를 쫓아가며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주머니에 슬쩍 손을 집어넣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우리 유교수가 기어코 사고를 쳤네.”

“그럼 어쩌시려고...”

“말을 좀 알아먹게 만들어줘야지.”

 

유교수? 처음 듣는 인물이었다. 하여튼 이 바닥은 정직하게 이름 석 자 안 쓰고 되지도 않는 가명으로 돌려막기다. 심부름하는 나조차도 원래 이름 여섯 자 대신 오징어로 불리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이번에 등장한 건 어쩐지 중요해 보이는 인물 같았다. 우선 박실장이 직접 나섰다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양반이 저 몰골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말 다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모텔 앞에 주차된 잘 빠진 외제 차를 타고 어딘가로 운전해 가기를 20분쯤 지났을까. 조수석에서 삽을 꼭 끌어안고 얼어있던 나는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처음에는 박실장이 분을 못 이기고 시트를 내려치나 싶었는데, 흘낏 뒤를 보니 박실장은 무릎 위로 깍지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럼 이 묘하게 쿵쿵대는 울림과 희미한 신음은 대체...? 까지 생각했을 때 운전 중인 강망치와 눈이 마주쳤다. 나만큼이나 긴장한 얼굴로 땀을 줄줄 흘리던 강망치가 눈을 부릅뜨고 내게 경고했다. 나는 단번에 알아듣고 다시 차려 자세로 앞을 바라봤다. 이 차에는 세 명만 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강망치는 어디 으슥한 산길을 운전해 한참 올라갔다. 비싼 차가 망가질까 봐 염려될 정도로 험한 산길이었다. 대충 주변 꼬라지를 보니 차를 끌고 올라와서는 안 되는 길 같아 보이긴 했다. 그러나 강망치는 꿋꿋하게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뒤에서는 여전히 이상한 소리가 이어졌지만 우리 모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형님,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린 박실장은 내게 땅을 파라고 명령했다. 딱 사람 하나 꼿꼿하게 세워서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깊게 파라는 구체적인 주문이 따라왔다.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성실하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박실장은 가만히 서서 담배나 뻑뻑 피워댔다. 친절하게 내가 파는 구멍을 향해 휴대폰 후레시를 켜주기도 했다.

 

“삽질 해본 적 있어?”

“없는데요.”

“너 군대도 안 갔다 왔어?”

“저 일본인인데요...”

 

강망치가 조금 머쓱한 얼굴로 내게 삽질의 요령을 알려줬다. 삽을 이렇게 잡아야지. 왼손은 여기, 오른손은 손바닥이 하늘을 보게. 이렇게 발로 흙에 꽂아 넣고, 자, 봤지? 허리 반동으로 흙을 떠내는 거야. 삽질의 일타강사로 불려도 될 정도의 명강의였다. 이렇게 잘하면 네가 파면 되지 않겠냐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또 참아냈다. 오늘 하루는 인내의 날이다.

 

기어코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을 다 파낸 후에야 나는 삽질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파다 보니 내가 구멍에 들어간 모양새가 됐는데 그 꼴로 하늘을 바라보니 오싹했다. 폐암 걸리기 일보 직전의 수준으로 줄담을 피워대는 박실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순한 햄스터의 표정으로 지껄였다.

 

“다 했어요.”

 

사실 네 무덤 네가 판 거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심장이 쿵쾅댔으나 다행히 강망치가 내게 나오라고 손을 뻗어줬다. 그걸 붙잡고 낑낑대며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다. 박실장이 내게 손짓하더니 다시 차로 돌아가 트렁크 문을 열었다. 마침내 아까부터 계속 신경을 긁었던 공포스러운 소음의 정체가 드러났다. 

 

트렁크에 들어있는 건 웬 남자였다. 손목과 발목이 꽁꽁 묶여 있었고, 입에도 테이프가 붙은 채였다. 박실장이 내내 들고 있던 휴대폰 후레시를 남자의 얼굴에다 쐈다. 나는 입을 벌렸다. 갑작스러운 빛에 놀란 듯 그가 다급하게 눈을 질끈 감았다. 박실장이 손을 뻗어 그의 입에 붙은 청 테이프를 뜯어냈다.

 

“유교수.”

“.......”

 

그는 대답 대신 그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박실장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제 좀 제대로 대화할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박실장은 또 뜬금없이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싱글벙글 웃더니 강망치에게 턱짓했다.

 

“자리에 좀 모셔다드려라.”

 

강망치가 번쩍 그를 들었다. 그는 버둥대지도 않고 축 늘어져 있었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갈 때만 작게 움찔할 뿐이었다. 그리고 강망치는 그를 내가 열심히 팠던 구멍에 집어넣었다.

 

“징어야, 뭐하니. 교수님 추우시겠다.”

 

그 말인즉슨 나더러 그를 아예 땅에다 파묻으라는 소리다. 안 그래도 남자는 이미 머리만 덜렁 땅 위로 나와 있는 모양새였다. 나는 까끌까끌한 목구멍에다 애써 침을 삼켰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어떻게든 힘을 주고 천천히 구멍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심장이 이대로 터져버릴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땀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만 같았다. 나는 대충 눈가만 닦아내고 다시 삽을 들었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내 돈 칠백만 엔을 갖고 튄 애인은 약간 엉뚱한 면이 있었다. 가끔 뜻을 골몰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쉬운 말들을 내뱉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그는 바다에 놀러 가자며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한낮의 여름 바다 모래사장에 누군가를 묻고 싶어.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렇게 말했던 유우시를 새벽의 겨울 산 흙바닥에 묻고 있다.

 

 

 

Rodrigo y Gabriela - Tamacun

씨티오브씹새끼

리쿠, 유우시

W. 락스

 

 

 

3년 좀 안 되게 사귀었다. 남자끼리 사귀니까 날짜를 세거나 기념일을 챙기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도 3년을 못 채웠다는 걸 기억하는 이유는 유우시가 3주년을 딱 일주일 앞두고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몸만 사라진 줄 알았는데 뒤늦게 뒤져보니 내 통장과 인출 카드도 없었다. 통장에 들어있던 칠백만 엔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처음에는 진짜로 장난인 줄 알았다. 하루이틀 쪼이게 만들고 짜잔 다시 나타나 이제야 자신의 소중함을 알겠냐며 쫑알대는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원래 걔는 이런저런 심장 떨리는 장난을 곧잘 치고는 했으니까. 3주년이라고 통 크게 서프라이즈하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믿었던 내게 돌아온 건 유우시가 한국으로 쨌다는 소식, 그리고 그의 화려한 과거... 경찰서도 아니고 후생노동성 한복판에서 울부짖는 내게 후배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전했다.

 

선배, 이 새끼 아주 악질이에요.

 

나는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웅얼댔다.

 

유우시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후배의 표정이 싹 변했다. 그는 아주 미친놈 보듯이 나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사랑이라는 게 진짜 무섭긴 하네요. 선배가 이 지경 이 꼴이 다 되고. 회상하기도 가슴 아린 구슬픈 과거다. 이게 바로 2년 전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나는 유우시를 찾으러 한국까지 건너왔다. 대충 주변에는 애인에게 돈 뜯겼다는 사연만 얘기했더니 다들 꽃뱀 여자친구가 내 돈을 훔쳐 갔다고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십자가가 나더러 여자 때문에 팔자 꼬인 케이스라고 떠들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틀렸다. 내가 돈을 뜯긴 대상은 꽃뱀도 아니고 여자친구도 아니다.

 

“유교수, 메틸아민 어디로 빼돌렸어요?”

 

내 돈을 훔쳐 간 건 마약사범 남자친구다.

나는 메틸아민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머리만 덩그러니 땅 위에 남고 나머지는 꽁꽁 파묻힌 신세를 하고도 유우시는 아주 태연한 얼굴이었다.

 

“제가 안 빼돌렸는데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우시의 목소리를 듣는 건 정말 2년 만이었으므로 나는 벅차서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정신력으로 참았다.

 

“그럼 내 사라진 메틸아민은 어디로 갔지?”

“제가 빼돌린 게 아닌데 저는 모르죠.”

 

유우시는 무척이나 유려한 한국어 솜씨를 뽐냈다. 내가 유우시를 처음 봤다면 그가 정말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창고에는 나랑 유교수만 들어갈 수 있는데?”

“도둑이 들어갈 수 있는 곳 못 들어가는 곳 가리나요.”

“그럼 왜 도망쳤어요?”

“그거야 박실장님이 그 꼴로 저한테 덤벼 드시니까.”

 

유우시의 재능을 한 가지 꼽아보라면 어떻게든 고집을 꺾지 않는 무소의 뿔 같은 당당함이 있다. 개소리를 태연자약한 얼굴로 진지하게 할 때면 진짜로 긴가민가할 정도다. 내가 그렇게 져준 말싸움이 몇 번이더라. 그러나 박실장은 나 같이 물렁물렁한 타입이 못 됐다. 나는 그가 보테가 베네타의 팔라초가 헐렁하게 남아도는 발로 유우시의 면상을 걷어차지 않을까 긴장했다.

 

“밤이 늦어서 그런가 도무지 대화가 안 되네.”

 

혀를 쯧쯧 차더니 박실장이 등을 돌렸다.

 

“우리 낮에 다시 얘기를 좀 합시다. 거기서 깊이 생각을 좀 해보세요.”

 

시침 뚝 떼는 유우시를 홀로 남겨두고 박실장은 등을 돌렸다. 나는 그를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멈춰 서 유우시를 바라봤다. 그는 땅에 파묻힌 주제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눈 맞춤이 길게 이어졌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나는 유우시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그야말로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유우시는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 작은 머리통을 갈라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다.

 

“오징어, 뭐해?”

 

유우시는 끝끝내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 역시 입을 다물고 얌전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박실장과 강망치가 이미 올라탄 차의 조수석 문을 열었다. 강망치는 미련 없이 차를 빼기 시작했다. 헤드라이트에 유우시의 말간 얼굴이 반짝였다. 

 

“관상이 좀 어때?”

 

박실장의 질문에 나는 잠깐 침묵한 후 겨우 입을 뗐다.

 

“...멀쩡하게 생겼는데요.”

 

유우시의 재능 중 또 하나는 누구보다 멀쩡하게 생긴 얼굴로 전혀 멀쩡하지 않은 짓거리를 해내는 능력이다. 후배는 특히 그 점을 두고 유우시를 악질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나는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을 무릎께에 문질러 닦았다.

 

“이틀 있다가 다시 오자고.”

 

나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왜 하필 저를...?”

 

박실장은 아, 하더니 여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같은 일본인이니까 통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리고 유교수가 얼굴을 좀 밝힌단 말이지. 나는 박실장이 뒤에 붙인 말을 듣고 어금니를 깍 깨물었다. 그러나 다행히 박실장이 나와 유우시가 얽힌 과거를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답한 대로 같은 일본인이라는 점, 그리고 내 잘빠진 얼굴 때문에 나를 골랐던 것이었다. 

 

박실장은 친절하게도 나를 집 앞까지 태워줬다. 나는 차에서 내려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차 뒤꽁무니가 아예 사라질 때까지 폴더 자세를 펴지 않았다. 차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바로 세웠다. 한참 늦은 새벽이라 거리가 캄캄했다. 나는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이층집에 사는 집주인은 이미 잠든 후인지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도어락을 천천히 누르고 집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에 그대로 서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까부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이었다. 

 

키패드에 전화번호를 찍었다 지웠다 찍었다 지웠다를 한참 반복하다가...

나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20분쯤 전봇대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길을 다섯 번쯤 꺾자 허름한 민트색 마티즈가 나타났다. 발목에 숨겨둔 차 열쇠를 꺼내 차 문을 열었다. 시동을 걸고 거칠게 핸들을 돌렸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내 앞에 놓인 선택지들 중에 가장 최악이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았다... 형은 이렇게 생겼으면서 왜 이따구로 살고 있어요? 구공탄의 말이 떠올랐다. 상상 속의 내가 제육도시락을 집어던지며 소리 질렀다. 그럼 나더러 유우시를 거기에 그냥 버려두라고? 너 제정신이야?

 

한 시간은 넘게 달렸던 것 같다. 슬슬 동이 틀 무렵이 됐다. 아까 탔던 마이바흐와 내가 운전하고 있는 마티즈는 승차감부터가 아예 달랐다. 험한 산길에 들어서자 엉덩이로 울퉁불퉁한 자갈의 감촉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유우시의 머리통이 다시 등장했다. 나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한 시간 넘는 운전 동안 유우시에게 할 말을 쉴 새 없이 생각했는데, 다시 그 얼굴을 마주하니 모든 게 하얗게 날아갔다. 유우시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왼쪽의 울창한 숲을 바라보며 유우시를 향해 어떤 욕을 퍼부을 지 고민했다가, 손을 들어 이마를 긁으며 유우시를 어떻게 비웃을지 고민했다가, 눈을 감았다 뜨며 유우시에게 그간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읊어줘야겠다 결심했다.

 

“리쿠.”

 

그러나 유우시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나 너무 추워.”

 

그렇게 말을 하는데...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유우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방금 내가 채워 넣었던 구멍의 흙을 맨손으로 다시 파내기 시작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언제 박실장의 마이바흐가 다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달달 떨면서도 끝까지 구멍을 파냈다. 삽은 강망치가 챙겨 간 데다 맨몸으로 뛰쳐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쓸 수 있는 도구라곤 맨손뿐이었다. 나는 유우시의 허리춤까지 땅을 판 후 상체를 세웠다. 유우시에게 손을 뻗으려다 도로 물렀다. 그리고 흙과 피로 엉망인 내 손을 바지에다 열심히 문질러 닦았다. 겨우 깨끗하게 만들고 나서야 유우시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유우시의 손 역시 엉망인 상태라 다시 내 손도 더러워지고 말았다.

 

“리쿠.”

 

유우시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와중 유우시가 나를 불러왔다. 나는 유우시의 목소리가 약간 거칠어진 걸 눈치 채고 집 근처 약국의 위치를 머릿속에서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안 훔쳤어.”

 

훔친 게 너무 많아서 대체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유우시도 내뱉고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재빠르게 다음 말을 덧붙였다.

 

“메틸아민. 그건 진짜 안 훔쳤어. 박실장이 자기 별장으로 빼돌려놓고 나한테 덮어씌운 거야.”

 

그럴 줄 알았다. 유우시가 비록 마약사범이라고 해도 도둑질 같은 그런 더러운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죄다 비열한 박실장의 추잡한 계략이었던 거다.

 

“그니까 빨리 박실장 별장으로 가자.”

“...왜?”

 

대답하고 나서야 나는 이게 2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유우시와의 대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년 만의 재회에서 처음 내뱉은 말이 왜, 라니. 좀 더 쓸 만한 말이 더 있었을 텐데. 야 이 미친새끼야, 혹은 칠백만 엔 어디에 썼어, 아님 박실장이랑은 대체 무슨 관계냐, 라든가. 아니면... 됐다. 후회해 봤자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게 내 신조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았다. 도망간 애인을 쫓아 한국까지 온 놈에게 나올 말은 아닌 것 같다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다.

 

“방심할 때 털어야지.”

“...뭘 터는데?”

 

그러나 유우시와 대화할수록 정신건강이 점점 더 나빠져만 가는 느낌이었다.

 

“메틸아민.”

 

잠깐의 침묵 후에 겨우 입을 다시 열었다.

 

“메틸아민을... 왜 터는데?”

“박실장한테 있는 메틸아민이 다 합하면 3천 리터는 돼.”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유우시의 다리에 묶인 밧줄을 풀다 말고 멍하니 위를 올려다봤다.

 

“전부 팔면 칠백만 엔 정도거든.”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우시가 눈을 도르륵 굴리더니 다시 쫑알댔다.

 

“아님 그걸로 약을 만들어서 팔면 칠천만 엔은 벌 수 있을 것 같기두 하고.”

 

그 순간 나는 내가 유우시의 예측 불가능성을 사랑하는 동시에 몹시 증오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유우시...”

 

한숨처럼 뱉었다.

 

“내가 도둑질을 어떻게 해.”

 

유우시가 강아지처럼 순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응? 막상 해보면 별로 안 어려워.”

 

나는 처음으로 후배의 말에 공감할 뻔했다. 유우시는 어쩌면 아주 악질이 맞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착하게 생겼는데?

 

“아니, 어렵고 나발이고. 지금 나더러 범죄를 저지르라고?”

 

고개를 갸웃하던 유우시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내질렀다. 에, 리쿠.

 

“아직도 경찰이야?”

 

나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월터 옐로우라는 인간이 있었다. 단언컨대 내가 들은 가명 중 최악의 네이밍 센스를 자랑한다. 이름만 들어도 충분히 그의 인생 궤적을 짐작 가능하겠지만 그는 도쿄대 화학공학과 교수인 동시에 마약제조업자였다. 다이아몬드보다 반짝이는 순도 97.7%의 메스를 몇 톤씩 찍어냈다.

 

후배는 월터 옐로우와 유우시가 나란히 찍힌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월터 옐로우 본명이 뭔지는 선배도 알죠?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지껄였다.

 

토쿠노라는 성씨가 이 두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

 

나는 월터 옐로우의 본명이 토쿠노 마시로라는 것도 알았고, 유우시가 토쿠노 유우시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3년 가까이 사귄 애인을 마시로와 성씨가 겹친다는 이유로 의심할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마시로는 분명 자식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독신이었다. 

 

무엇보다 유우시는 마시로를 전혀 닮지 않았다. 유우시가 더 귀엽고 잘생겼다. 물론 납작하게 썰린 광대나 쭉 뻗은 콧대나 단단한 턱선이나 순한 눈꼬리나 쌍꺼풀 정도는 겹쳤지만 아무튼 그 악독한 범죄자와 유우시는 완전히 딴판이다. 유우시가 훨씬 천사 같다. 가끔 얄미운 행동을 하기도 하고 미운 말을 할 때도 있지만 알고 보면 속이 깊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애인이었다. 나는 유우시가 담배도 피지 않고 술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걸 침 튀겨가며 후배에게 설명했다. 후배는 질린다는 얼굴로 내 말을 막았다.

 

몇 년 전부터 밀키웨이라는 신종 마약이 나타났어요. 순도 99%짜리 메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죠? 온갖 범죄자들과 야쿠자가 다 이 판에 껴있어요. 그 밀키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마약 때문에요. 우리 팀 애들도 몇 명이나 죽어 나갔어요. 그 고생을 하면서 겨우 찾아낸 게 토쿠노 유우시예요.

 

후배의 손가락이 유우시의 활짝 웃는 얼굴을 쿡 찔렀다.

 

월터 옐로우의 사생아라고요. 지 애비보다도 지독한 마약을 만들어냈어요. 영장까지 다 받아서 치기만 하면 됐는데, 밀키웨이를 둘러싸고 야쿠자끼리 뜬금없이 칼부림을 벌이는 바람에... 그 틈을 타서 한국으로 튄 것 같아요. 도주 자금으로 선배 돈을 털어간 거고요.

 

왜 하필이면 한국인데?

 

후배는 파일철에서 서류 하나를 더 꺼냈다. 낯선 한국어가 군데군데 적혀 있었다. 첫 장에 붙은 웬 반반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박실장이라는 놈인데요. 박 씨도 아니고 진짜 실장도 아니긴 한데, 뭐 그런 이름으로 활동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야쿠자들이랑도 꽤 연이 닿아 있는 것 같고. 얼마 전부터 한국에도 밀키웨이가 나타났는데 죄다 이 남자를 통해서 흘러갔어요. 토쿠노도 분명 여기로 간 걸 거예요.

 

서류를 읽는 동안 후배는 말을 이어갔다.

 

한국도 마약 때문에 난리잖아요. 아예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참에 공조를 요청할 생각이에요. 원래도 협력 관계였으니까...

나도 갈래.

 

후배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뭔 소리예요?

나도 한국으로 간다고.

선배, 할 일 없어요?

 

파일철을 몽땅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배가 뒤늦게 뺏어 들려는 것처럼 팔을 허우적거리길래 얼른 뒤로 숨겼다. 

 

어차피 경찰에 인력 요청할 거 아냐? 그럼 무조건 우리한테 넘어올 거고.

위에서 절대 선배 안 넣어줄 걸요.

 

후배가 고개를 저었다.

 

선배가 토쿠노에 얼마나 미쳐있는지 다들 알 텐데.

 

미쳤다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뜻으로 쓰지만 종종 긍정적인 뜻으로 쓰일 때도 있기에 나는 좋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후배는 악독한 저주를 계속해서 퍼부었다.

 

절대 안 돼요. 토쿠노 만나면 바로 도망가게 해줄 거잖아요.

넌 내가 그렇게 얼빠진 놈으로 보이니?

선배가 토쿠노랑 엮여서 제정신으로 있는 꼴을 본 적이 없거든요.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후배의 선구안이 대단했던 것 같다.

 

“리쿠, 왜 박실장 같은 놈 밑에서 일하고 있는 거야.”

 

2년 동안 한국으로 건너와 내가 했던 개고생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그동안 편히 잠을 이뤘던 날이 없었다. 오늘의 유우시는 그 무수한 악몽들 중 가장 멀쩡한 편이었다. 생매장을 당할 뻔하긴 했지만, 아무튼 사지는 멀쩡하니까. 나는 유우시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후배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는 나 때문에 온 거야?”

 

나는 유우시의 말을 씹고 빠르게 계획을 세웠다. 일단 유우시를 다시 묶어놓고. 차에 태운 다음에 후배에게 전화해야겠지. 월터 옐로우의 사생아를 찾아냈다고. 잡아다 족치면 박실장과의 연결고리도 나올 테니 일망타진할 일만 남았다고. 그리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해주는 거다. 이것 봐. 내가 그렇게 얼빠진 놈이 아니라니까? 경비국 경비기획과는 아무나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

 

“계속 나를 찾아다녔어?”

 

그러나 문득 생각난 얼굴은 후배가 아니라 구공탄이었다. 구공탄 말이 맞았다... 나는 유우시를 존나 사랑했다. 견딜 수 없는 건 그게 과거형이 아니라 진행형인 것 같다는 점이었다. 

 

“많이 화났어? 박실장 메틸아민 털면 칠백만 엔은 껌인데...”

“유우시.”

 

결국 무릎을 꿇듯이 땅에 주저앉았다.

 

“나 화 안 났어.”

 

유우시가 허리를 굽혔다. 촘촘한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내가 미웠어?”

 

나는 그제야 유우시가 내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를 미워하고 싶었어.”

 

항복 선언이 힘없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근데 도대체 너를 어떻게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어. 후배가 내 어깨를 붙잡고 내뱉은 말들이 떠올랐다. 선배, 정신 좀 차려요. 그냥 선배를 이용한 거라니까요. 걔는 선배가 생각하는 그런 놈이 아니에요. 다 연기였겠죠. 칠백만 엔까지 뜯기고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나는 중얼거렸다.

 

“보고 싶었어...”

 

그러니까 너도 나를 보고 싶었다고 말해. 그러자 유우시의 팔이 예고 없이 눈앞으로 침범했다. 앙상하게 마른 팔이 내 머리통을 꼭 껴안는다. 납작하고 딱딱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우시가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

 

유우시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나는 땀냄새와 쿰쿰한 흙냄새 사이에서 유우시의 체향을 어떻게든 찾아내 코를 박았다. 그리고 참을 수 없어 내뱉는 순간,

 

“근데 왜 나를 버렸어?”

 

마침내 나는 내가 2년 내내 엎질러진 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도시쥐에게도 대도시의 삶이 고달픈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도시가 바다 건너 외국이라면 더더욱.

 

나는 방독면을 고쳐 쓰고 눈앞의 거대한 냄비 안을 들여다보았다. 부글거리는 액체가 완벽한 색깔이 되었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다시 뒤로 뺐다. 페닐아세톤, 알루미늄 아말감, 메틸아민 어쩌고저쩌고를 때려넣고 한참 저은 결과물이었다. 감기약 으깨서 야매로 만들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공정 과정이다. 그러나 배움에는 끝이 없고 인류는 진화를 거듭한다. 나는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다가도 문득 고개를 갸웃하고는 했다. 어쩌면 인간의 실수는 끝이 없다는 말이야말로 지금 내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등학교는 물론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으며 과학 시간에는 대체 뭘 배우는지조차 가물가물했으나 몇 가지 화학 공식에 대해서는 전문가로 불릴 만했다. 박실장은 화이트보드에 페닐아세톤의 구조식을 좔좔 써내려가는 나를 두고 부전자전이라며 박수쳤다. 도쿄대 화학공학과 교수의 아들이라는 뜻인지, 마약제조업자 월터 옐로우의 아들이라는 뜻인지는 긴가민가하다. 주구장창 나를 교수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걸 보면 그냥 나를 놀리고 싶었던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튼 확실한 건 내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이 꽤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빚이라든가, 범죄자의 사생아라는 낙인이라든가, 피땀눈물 흘려 겨우 만들어낸다는 게 기껏해야 마약인 범죄자 인생이라든가, 사방에서 들이미는 총칼이라든가.

 

아버지는 평생을 경찰과 단속반에 쫓겨 살다 끝에는 야쿠자의 칼에 꽂혀 죽었다. 나는 열둘의 나이에 아버지를 죽인 야쿠자로부터 내 친부가 월터 옐로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아버지가 갚지 못한 빚이 이자까지 도합 이천만 엔이며, 내가 그 돈을 대신 갚아야 한다는 개소리를 진지하게 늘어놓았다. 그해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시급이 970엔이었으므로 내가 대략 112년 동안 빅맥을 포장하면 갚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는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원했다. 덕분에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발도 들이지 않을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았다.

 

어쩌면 평생 이 짓거리를 하면서 살아야 할 수도 있겠다.

 

마약 배달만 다니다 처음으로 제조에 손을 댔던 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다이아몬드보다 휘황찬란하게 번쩍번쩍 빛나는 알갱이들을 본 깡패 새끼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기계에 약을 집어넣어 버튼을 눌러대던 덩치 하나가 번쩍 그 기계를 위로 들었다. 화면에 99라는 숫자가 번쩍였다. 그 순간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절망과 비참함을 느꼈지만 금방 극복해냈다. 112년 동안 빅맥을 포장하는 것보다 14년 동안 메스를 만들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야 견딜 수 있었다. 참고로 14라는 숫자는 내가 서른 살이 되는 해에 풀어주겠다는 그들의 말에서 계산한 값이었다.

 

한 번씩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에 잠겨 주체가 안 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깡패 새끼들도 나를 자유롭게 풀어줬다. 그래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루 종일 영화관에 죽치고 있거나 다리 밑에 쭈그려 앉아 궁상을 떠는 게 다였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강가의 썩은 물을 보던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내 얼굴을 알아볼 만한 인간은 마약 배달을 하던 와중에 마주쳤던 약쟁이 새끼들이 다였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약이라곤 평생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반짝이는 눈과 마주쳤다.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미소를 짓는다. 깊게 파이는 볼우물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뒤늦게 리쿠가 고백하길 처음 꺼낸 말이 너무 흔하디흔한 멋없는 수작이라 무시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벌벌 떨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이 흔한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리쿠는 내 옆에 주저앉아 이름을 물었고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리쿠는 도쿄 같은 대도시는 살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자신은 지방 출신이라 이렇게 시끄러운 동네에 적응하기가 힘들다고. 그리고 내 고향을 물어오길래 나는 평생을 도쿄에서 살아왔다고 대꾸했다. 리쿠는 어쩐지 도련님처럼 생겼다며 장난스럽게 웃다가 말했다.

 

가끔 도시에서의 삶이 너무너무 외로울 때가 있거든요. 유우시 씨도 딱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서요.

 

그제야 나는 틈만 나면 나를 잡아먹으려드는 이 끔찍한 감정의 이름이 외로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서울에서 불법체류자 두 명이 갈 만한 곳은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 중 한 명이 마약사범이고, 한국과 일본 경찰 모두가 뒤쫓고 있고, 방금까지 산에 파묻혀 있었고, 언제든지 도망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놈이라면 선택지가 매우 줄어든다. 특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조건이었다.

 

나는 결국 프린스모텔 주차장에 차를 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한국인들의 지혜를 이용하기로 한 셈이다.

 

"일단 먼저 씻어. 난 전화 좀 하고 올게."

 

둘 다 산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것 같은 심각한 꼴이었지만 그나마 내 몰골이 좀 더 나았다. 유우시를 방 안에 밀어 넣고 등을 돌렸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내내 주머니에 처박혀 있던 휴대폰을 드디어 꺼내들었다. 전화번호를 찍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곧장 연결됐다.

 

- 여보세요? 선배 대체 어디예요?

 

"유우시 찾았어."

 

- 어딘데요, 지금?

 

토쿠노 찾았답니다. 후배가 보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뻑뻑해진 눈을 감았다 떴다. 이제 정말로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곧 있으면 또 약쟁이들에게 마약을 배달하러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박실장이랑 일하고 있는 게 맞았어. 근데 둘 사이에 일이 좀 있었거든. 박실장이 얼마나 씹새끼인지 너도 알지? 내가 아무리 지금 마약 배달 일을 하고 있더라도 사실은 경찰이잖아. 난 인간적으로 박실장같이 비열한 놈은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선배.

 

무언가 눈치 챈 듯 후배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 지금 어디냐고요.

 

"박실장이 얼마나 씹새끼냐면, 아니 무려 산 사람을 산에다 생매장을 하려고 했다니까? 지금이 얼마나 추운데, 응? 이 겨울에 산에다 사람을 파묻었으려고 했어. 진짜 그건 사람이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해."

 

- ...설마 박실장이 산에다 파묻은 토쿠노를 선배가 구해줬다는 얘기는 아니죠?

 

"......."

 

나는 코를 한 번 킁 먹었다. 후배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할 말이나 마저 끝까지 하기로 했다.

 

"내가 작업장까지 털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박실장 별장으로 가봐. 거기 메틸아민 3천 리터가 있다는데 암만 봐도 합법적인 루트로 산 건 아닌 것 같거든."

 

- 뭘 털어요. 됐고 빨리 토쿠노나 다시 파묻어놔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 그리고 선배는 이제 철수해요.

 

"뭘 했다고 철수야."

 

- 뭘 했으니까 철수하라는 거예요. 박실장이 눈치 까고 튀면 어쩔 건데요?

 

"튀기 전에 끝내면 되지."

 

- 토쿠노 그 새끼는 지금 어디 있어요?

 

새끼라고 부르지 말라고 호칭을 지적했다가는 후배가 당장이라도 뛰어와 내 머리통에 대고 총을 쏠 것 같았다. 나는 대충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무사히 잘 있어."

 

- 무사히 잘 있으면 안 되는데 왜 무사히 잘 있어요? 빨리 원래대로 묻어두라고요.

 

"야."

 

나보고 애인을 산에다 두 번이나 묻으라고?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참았다. 애꿎은 벽만 쿵쿵 차대다 겨우 대꾸했다.

 

"박실장 별장이나 가봐."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혹시 내가 지금 사랑에 눈이 멀어 폐급 경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사고회로는 곧 씻고 나온 유우시가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안 그래도 산에 파묻혀 있어 추웠을 텐데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나는 근처 옷가게가 어디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뒤. 양손 무겁게 쇼핑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프린스모텔 앞 당당하게 불법 주차된 낯익은 외제차를 발견하고 말았다.

 

"이런 씹..."

 

어느새 입에 딱 달라붙어버린 한국어 욕을 짓씹으며 나는 계단을 뛰어 올랐다. 한 번에 네다섯칸 마구 뛰어넘으며 쇼핑백까지 집어던지고 달렸다. 복도에 들어서자 501호가 문이 활짝 열린 채 나를 맞이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 앞에 섰다.

 

"이것 봐라."

 

박실장이 침대 위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유우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찬찬히 숨을 골랐다.

 

"유교수 야반도주 상대가 오징어였어?"

 

히죽거리는 면상이 유난히 얄미워 보였다. 무어라 대꾸할지 머리를 굴려보기도 전에 짜릿한 충격이 정수리에 내다꽂혔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시야가 가물가물해졌다. 완전히 기절하기 직전 나는 겨우 턱을 들어 위를 바라봤다. 삽을 움켜쥔 강망치가 혀를 차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두드려 맞고 있었다. 어느 구둣발에 명치가 차이고 나서야 눈이 뜨인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는 삽의 위력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어, 이 새끼 눈 떴는데요."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입에서 피인지 침인지 모를 액체를 질질 흘리는 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제야 내가 처한 꼴이 완벽하게 이해가 됐다. 그냥 얌전히 흔들어 깨웠어도 충분히 정신을 차렸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눈 뜰 때까지 닦아 패라고 한 모양이었다. 대여섯은 되어 보이는 깡패 새끼들이 나를 마구 짓밟고 있었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프린스모텔 501호에 비해 훨씬 널찍한 공간이었다. 박실장은 소파에 삐딱하게 기대 앉아 폭행 쇼를 구경 중이었다. 강망치가 바로 그 옆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어디로 눈을 굴려봐도 여전히 유우시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강망치의 커다란 골프가방만이 닫힌 채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 오징어, 내 말 들려?"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켁켁대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박실장이 갸웃하더니 깡패들에게 턱짓했다.

 

"얘기 좀 해보게 멈춰봐."

 

아이러니하게도 폭행이 멈추자 비로소 고통이 느껴졌다. 온몸이 빠개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보니 놈들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6대1로 패는데 연장까지? 이 비겁한 새끼들... 나는 벅벅 이를 갈며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징어, 이제 들려?"

 

"네, 아주 잘 들립니다."

 

아주 공손하게 대답했다. 박실장이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암만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는데."

 

그러더니 몸을 낮춰 나를 빤히 바라봤다.

 

"뜬금없이 유교수를 왜 데리고 튄 거야?"

 

나는 박실장의 낯짝을 살피며 잠시 가늠했다. 프린스모텔에 방 잡은지 1시간도 안 돼 방문 따고 쳐들어온 일련의 과정이 지나치게 재빨랐다. 아무리 한국인은 빨리빨리 정신이 있다 해도.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밑밥을 깔아둔 건지 긴가민가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

 

최대한 뻔뻔하게 구라로 밀고 나가자. 나는 나오는 대로 씨부렸다.

 

"사실 산에다 사람을 묻는 건 범죄잖아요? 범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너무 찝찝해서요..."

 

박실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마약 배달하는 놈이 뭔 소리야?"

 

그러나 나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실장님. 암만 그래도 마약 배달이랑 생매장이랑 같나요. 제가 이래 보여도 상당히 마음이 약하거든요. 계속 그 산에 묻힌 얼굴이 아른아른 거려서 도저히 무시를 못 하겠더라고요. 거기 내버려뒀다가는 그냥 죽어버릴 것 같잖아요."

 

박실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재빠르게 몸을 굽혀 무릎을 꿇었다. 그 와중에 상의가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졌다. 이미 휴대폰을 뺏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박실장이 내 휴대폰을 뒤져 내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을 가능성을 계산해봤다.

 

"그래서, 불쌍해서 유교수를 다시 꺼내줬다고?"

 

경찰인 걸 알았다면 이렇게 잡아다 패진 않았겠지. 냅두고 얼른 튀거나, 아님 콱 죽여 버리고 진짜로 산에 묻어버렸거나. 나는 모 아니면 도에서 빽도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

 

"네... 죄송합니다, 실장님."

 

"걸리면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거길 다시 기어 올라간 이유가 그냥 불쌍해서였다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봅니다."

 

박실장의 입 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그래?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네. 그때 새벽이고, 어, 깜깜하기도 했잖아요. 산짐승한테 잡아먹히면 어떡하나 하고. 만에 하나라도 곰이 나타나서 그 남자를 보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요? 머리도 엄청 작고 몸도 삐쩍 말라서 순식간에 잡아먹힐 텐데."

 

"다시 돌아간다면 이제 안 그럴 거라는 거지?"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구라쳤다.

 

"당연하죠. 절대,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제가 잠깐 진짜 미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박실장이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까만 정장이 반질반질했다. 그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뭐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가자고."

 

나는 눈을 깜빡였다.

 

"네? 어딜...?"

 

"다시 돌아가도 이제 안 그럴 거라며."

 

문득 바닥에 놓인 강망치의 골프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지퍼가 굳게 닫힌 꼴이 어쩐지 불안했다. 시선이 길어지자 박실장이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골프가방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럼 다시 묻으러 가야지."

 

다음 중 제일 가는 씹새끼를 고르시오.

 

일. 애인 돈 칠백만 엔을 훔쳐 달아난 토쿠노 유우시.

 

이. 애인을 하루에 두 번씩이나 산에 파묻는 마에다 리쿠.

 

정답은 삼. 일번 이번 빼고 죄다 씹새끼들이다.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앞만 바라봤다. 묘하게 쿵쿵대는 울림과 희미한 신음이 어디선가 계속 들려왔다. 흘낏 사이드미러를 바라보자 뒤에서 바짝 붙어 따라오는 시커먼 승합차가 보였다. 아까까지 나를 두들겨 패던 놈들이 저 차에 전부 타 있었다.

 

한참 험한 산길을 올라가던 차가 겨우 멈췄다. 아주 강력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똑같은 일을 겪었던 것 같은데? 차이라면 그때는 유우시가 파묻혀 있었고 지금은 구덩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는 것 정도랄까.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고 차에서 내렸다. 뒷좌석에서 태평하게 자고 있던 박실장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트렁크를 열었다. 골프가방이 희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열어봐."

 

나는 침을 삼키고 지퍼를 잡아 내렸다. 그리고 유우시와 눈이 마주쳤다. 유우시는 무릎을 접은 채로 꾸역꾸역 좁은 가방에 갇혀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알몸은 아니었고 샤워 가운 차림이었다. 나는 프린스모텔 비상계단 곳곳에 널브러져 있을 쇼핑백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징어야, 뭐하니?"

 

마치 몸이 굳은 것만 같았다. 그저 유우시의 얼굴만 한참 바라볼 뿐이었다. 약간 붉어진 듯 한 그의 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맞다."

 

박실장이 내 어깨에 턱 손을 올렸다.

 

"근데 있잖아... 징어가 한국에 칠백만 엔 떼먹고 도망간 여자친구 찾으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유교수가 한국에 넘어올 때 챙겨온 돈이 얼마더라?"

 

강망치가 대신 대답했다.

 

"칠백만 엔이었습니다."

 

"우와."

 

박실장이 쪼갰다.

 

"세상에 이런 우연의 일치가 다 있나."

 

같은 일본인이라서 그런가? 이런 게 다 통하네. 과장하는 말투로 박수를 쳐대던 박실장이 팔을 뻗어 유우시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냈다. 꼴에 배려라도 하듯 느릿느릿 움직이는 꼴이 가증스러웠다.

 

"유교수."

 

박실장이 상냥한 척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유우시가 약간 부은 듯 통통해진 입술을 앙 다물었다가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긴요."

 

대답이 한숨 같았다.

"칠백만 엔 떼먹고 도망간 여자친구가 참 씹새끼구나 싶죠."

나는 무감해 보이는 그 말간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여기에 덧씌워진 지친 표정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5년 전 나는 이 얼굴을 도저히 못 지나치고 말을 건 적 있다. 금방이라도 시커먼 물에 뛰어들어 꼬르륵 잠겨버릴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여자친구는 좀 버리세요."

나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싫은데요."

그리고 팔꿈치를 휘둘러 박실장의 코를 후려쳤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박실장이 주저앉았다. 강망치가 조건반사처럼 유우시가 누워 있는 골프가방을 향해 곧장 팔을 뻗어왔다. 아주 손쉽게 내 약점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재빨리 트렁크 문을 눌러 닫았다. 그대로 사이에 팔이 낀 강망치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얼른 다리를 뻗어 강망치의 얼굴마저 밟아 넘어트린 후 트렁크 문을 다시 제대로 닫았다. 운전석 문을 열며 흘낏 고개를 돌리니 뒤따라온 승합차에서 깡패들이 우르르 내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강망치가 차 시동을 끄지 않은 덕분에 그대로 페달을 밟기만 하면 됐다. 차문을 채 닫지도 못하고 출발했다. 몇몇이 내 쪽을 향해 몸을 던져왔다. 나는 다리로 엉겨 붙는 놈들을 뻥뻥 차대며 핸들을 돌렸다.

 

"야, 이 멍청이들아! 차로 다시 가!"

 

박실장이 악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실장과 강망치는 내가 이 정도로 몸이 날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았다. 내가 빽도에 모든 걸 걸기로 한 선택이 정답이었다는 뜻이다. 나는 일단 산 정상을 향해 마구 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돌과 나무에 차가 긁혀댔지만 어차피 내 차도 아니니 알 바 아니었다. 마약 팔아 산 슈퍼카다운 최후를 맞이하겠거니 싶었다. 그나마 길이 트여 있는 쪽을 향해 핸들을 돌리는 순간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나는 거의 핸들에 머리를 처박다시피 했다가 얼른 다시 허리를 폈다. 뒤를 돌아보자 승합차가 거의 붙을 듯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유우시, 괜찮아?"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와중에 한 번 더 쿵.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경추가 아렸다. 무어라 소리 지르기도 전에 다시 충격이 느껴졌다. 이번엔 뒤가 아니라 앞이었다. 한 눈 판 사이 거대한 고목을 들이받은 모양이었다. 에어백이 퍽 터지며 얼굴을 후려쳤다. 유우시의 이름을 내지르려는 순간 여태껏 느껴진 충격 중 가장 강력한 한 방이 찾아왔다.

 

쾅! 나무, 마이바흐, 스타렉스. 완벽한 3중 추돌이었다.

 

감독도 제목도 심지어 줄거리도 잘 모르겠는 영화였다. 티비 화면에서 낯선 얼굴들이 어색하게 대사를 쏟아냈다. 유우시와 나는 휴일이면 이렇게 아무 영화나 틀어놓고 소파에서 한참을 뒹굴었다. 지금도 내가 뒤에서 유우시를 꽉 끌어안고 다리를 포갠 채였다. 말랑거리는 배와 팔뚝을 마구 주물거리는데, 싫은 티 없이 얌전히 안겨 있던 유우시가 불쑥 고개를 돌렸다.

 

"리쿠는 왜 경찰이 됐어?"

 

직업을 밝힌 건 사귀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유우시가 공장에서 바디워시를 만드는 생산직이라는 구라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하는 한가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다. 내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들었는데도 유우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오오, 그러더니 내가 퇴근길에 포장해온 도시락 뚜껑을 열며 중얼거렸다. 잘 어울린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내 직업에 대해 물어온 건 처음이었다. 나는 유우시의 어깨에 턱을 포개고 말했다.

 

"멋있잖아."

"으음. 그런가?"

약간 발끈한 마음으로 유우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뭐야, 무슨 반응이야? 유우시, 혹시 경찰보다 소방관이 타입인 건 아니지?"

 

유우시는 티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무튼 한결같이 덩치 좋고 피부색 어두운 남자들을 선호하는 그의 취향을 고려하자면 그럴 듯한 의심이었다. 뱉어 놓고 그 의심에 설득돼 나는 배를 쭈물거리던 손을 위쪽으로 올렸다. 유우시가 다리를 퍼덕였다. 항복하겠다고 얇은 목소리로 꺅꺅대는 유우시의 위에 올라탔다. 가느다란 목선을 타고 쪽쪽대며 나는 웅얼댔다. 내가 왜 경찰이 됐냐면.

 

"유우시 괴롭히는 놈들은 내가 다 잡아가려고."

"나 만나기 전에도 이미 경찰이었잖아."

"그냥 분위기를 좀 맞춰주면 안 될까?"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얕은 한숨이 정수리를 간질였다.

"잘 어울려."

 

진짜? 응, 진짜. 리쿠 멋있잖아. 나는 가슴팍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물었다.

 

"근데 왜 나를 버렸어?"

 

리쿠. 유우시가 웃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넌 나를 좀 버릴 줄 알아야 해."

 

번쩍 눈을 뜨고서야 그게 꿈인 걸 깨달았다. 뺨에 느껴지는 건 따끈따끈하고 또 딱딱한 유우시의 가슴이 아니라 차갑고 거칠거칠한 흙바닥이었다. 곧바로 내 팔다리가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교수, 진짜 너무 서운하네요."

 

박실장이었다. 나와 조금 떨어진 앞쪽에 유우시 역시 팔다리가 묶인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박실장의 양옆으로는 덩치들이 뒷짐 진 자세로 쭈르륵 서 있었다. 좀 전에 나를 두들겨 패던 놈들이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꼼지락거리자 돌멩이 하나가 만져졌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남친 왔다고 단번에 나를 버려?"

 

돌멩이를 움켜쥐고 밧줄 위를 갉기 시작했다. 박실장이 신나게 떠들어주는 덕분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거의 묻히다시피 했다.

 

"저를 산에 묻으려고 한 건 박실장님이 먼저인데요."

"그 전에 나 배신하려고 한 건 기억 안 나는가 보다."

"제가 메틸아민 훔친 적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거 말고."

박실장이 유우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면서도 기민하게 둘의 기류를 살폈다.

 

"멋대로 계약 끝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건?"

눈을 깜빡였다. 유우시가 일본으로 돌아오려고 했다고?

"애초에 계약 기간은 3년이었는데요."

"그러니까 그 태도가 나는 너무 섭섭하다는 건데."

 

박실장이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쿠자들 털어내고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도와준 게 누군데, 꼴랑 3년만 일하고 다시 도망가는 건 너무 양심에 털 난 짓 같지 않아요?"

 

숨을 죽이고 둘의 대화를 훔쳐 들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거든요. 어차피 일본이나 여기나 그닥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은데, 왜 자꾸 돌아가려고 하지?"

 

뭐 중요한 거라도 놔두고 온 것처럼. 응? 나는 유우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야쿠자 새끼들이 자꾸 애인 가지고 협박해서 한국으로 도망쳐온 거라면서. 아직도 그 새끼들은 다시 유교수 잡겠다고 이를 갈고 있을 텐데. 일본으로 다시 가서 어떡하려고 그래요?"

 

조용히 박실장의 말을 듣고만 있던 유우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박실장님."

"네에."

"서울에 남을게요."

 

어깨가 튀어오를 뻔했다. 겨우 참아내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밧줄을 갉아내는 일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그러니까..."

 

유우시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

 

"리쿠는 풀어주세요."

 

그때 박실장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는 재빨리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척했다. 한참 침묵이 흐르더니 박실장이 걸음을 떼는 소리가 들렸다. 방향이 내 쪽이었다.

 

"너무 애절해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네."

 

내게 걸어온 박실장이 중얼거리더니 머리 위로 구둣발을 올렸다. 힘을 줘 꾸욱 밟아 내리기 시작했다.

 

"박실장님."

 

유우시가 말리려는 듯 박실장을 불렀다. 나는 골이 빠개질 듯한 고통에 비명을 참았다. 눈을 번쩍 뜨자 박실장이 걷어차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게 보였다. 얼른 발길질을 피해 몸을 퍼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박실장의 정강이를 들이받았다.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박실장에게 다시 몸을 날리려고 했지만 덩치들이 우다다 달려와 내 뒤통수를 잡아 바닥에 처박게 만들었다.

 

"박실장님."

 

유우시가 재차 박실장을 불렀다. 더 이상 침착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나는 입에 들어오는 흙을 켁켁대며 뱉어냈다.

 

"리쿠는 그냥 풀어달라고요."

"너 찾아서 한국까지 온 놈을 이대로 풀어주라고?"

 

박실장이 드디어 내 머리통을 걷어찼다. 바닥에 나뒹구는데 옆구리 쪽에 몇 번 더 발길질이 이어졌다. 축구공 차듯 맘껏 다리를 휘두르던 박실장이 말을 이었다.

 

"유교수, 주변 꼴이 안 보여요?"

 

박살난 두 대의 차량이 내 눈에도 잘 보였다. 그리고 아까 내 팔꿈치에 얻어맞아 코피가 터졌던 흔적이 여전히 박실장의 코밑에 얼룩덜룩했다. 나는 명치를 밟히면서도 유우시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어떻게든 소리를 참았다. 유우시가 몸을 들썩였다. 강망치가 얼른 유우시의 어깨를 잡아 누르는 게 보였다. 나는 그 꼴을 보고 튀어가려다 턱주가리를 걷어차였다. 아까 강망치의 손을 완벽하게 작살을 냈어야 했는데.

 

눈이 터진 것처럼 욱신거렸다. 애써 초점을 잡고 유우시의 얼굴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덩치들 중 한 명에게서 쇠파이프를 뺏어들고 온 박실장이 그걸로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네가 한번 대답해봐."

 

너 지금 풀어주면 얌전히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거야? 박실장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잔기침이 자꾸 튀어나왔다. 피 섞인 가래를 뱉어내고서야 겨우 입을 뗐다. 2년 전에.

 

"유우시가 내 돈 칠백만 엔을 가져갔는데."

 

박실장에게서 칠백만 엔을 털어내겠다는 유우시의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내내 생각해봤다. 여러 의심들은 유우시가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도와준 게 박실장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거 너한테 있지?"

 

눈빛이 부딪쳤다. 박실장이 눈썹을 들썩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돈 내놔, 씹새끼야."

 

터진 입으로 마구 주절댔다.

 

"그거 유우시랑 같이 살 집 구하려고 모은 돈이었는데, 네가 왜 가져가? 유우시가 가져가서 쓴 거면 모르겠는데 그걸 너한테 준 거면 말이 달라지지. 유우시가 만든 마약으로 장사해서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주제에 계약금까지 받아가? 야. 내 돈 내놔. 내 칠백만 엔 내놔. 나 그걸로 집 사야해. 유우시랑 같이 살 집 사야 한다고."

 

이 씹새끼야, 라고 한 번 더 못을 박으려고 했는데 박실장의 발길질이 더 빨랐다. 퍽. 시야가 뒤집혔다. 감정 섞인 폭력이 이윽고 쏟아졌다. 유우시가 비명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나는 목구멍이 뽑혀 나올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도 꿋꿋이 마침표를 찍었다.

 

"이 씹새끼야."

 

유우시 좀 풀어줘. 나 유우시 데리고 돌아갈 거야. 나 유우시 때문에 여기 온 거야. 유우시 다시 찾으려고 왔어. 유우시 없으면 나도 안 가...

 

박실장이 쇠파이프를 번쩍 들었다. 머리통을 으스러트리겠다는 각오가 굳게 보였다. 야만적인 깡패의 모습으로 완벽히 돌아간 박실장이 으르렁댔다.

 

"진짜로 일본으로 안 돌아가겠다고?"

 

나는 비스듬히 고개를 꺾었다. 눈물에 푹 젖은 유우시와 눈이 마주쳤다. 넌 나를 버릴 줄 알아야 해.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 둘 다 언제나 서로의 말을 그다지 잘 듣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쇠파이프가 내게 달려들었다.

 

탕!

 

원래 쇠파이프가 머리와 부딪히면 이런 소리가 났나?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이곳의 모두가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조폭 영화에 심취해있어 몰랐던 사실. 빨강 파랑 불을 번쩍이는 차들이 이 가파른 야산을 마구 질주해 올라오는 중이었다. 뒤늦게 삐용빼용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나는 허공에다 공포탄을 발사한 남자의 얼굴을 발견했다. 후배는 살인미수죄로 현장에서 적발된 박실장 대신 피해자인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후배가 대동한 한국 경찰들이 확성기에 대고 말했다. 동작 그만. 너희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박실장의 별장에서 발견된 건 메틸아민 3천 리터가 끝이 아니었다. 24시간 풀노동을 돌리는 현대판 노예들이 수십 명은 갇혀 있었다. 한국의 여러 마약 범죄들 중에서도 최대 규모인 동시에 최악으로 꼽힐 만했다. 언론은 이번 사건이 한국과 일본의 합작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일본 경찰이 큰 활약을 했다는 데에 관심이 쏠렸다. 으스대고 싶진 않지만 오징어라는 가명이 무색한 내 미모가 또 한몫한 모양이다. 대체 몇 년 전에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내 공무원증 사진이 인터넷에 박제됐다. 그리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토쿠노 유우시는 박실장의 협박에 의한 단순 조력자였으며, 수사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발표가 끝났는데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처음 내가 앞으로 나올 때만 하더라도 흐뭇해 보이던 윗선들이 전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특히나 후배가 가장 썩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 온 연락 화면을 들이밀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대로 마무리를 지어야 능력 있는 일본 경찰청 이미지로 끝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저와 유우시의 러브 스토리를 알게 된다면 저야 뭐 나쁠 건 없지만..."

 

당당하게 까발리기에는 유우시에게 걸린 타이틀이 너무 컸다. 일본 최악 마약왕의 사생아, 순도 99% 밀키웨이의 주인, 한국 조폭에게 억지로 협박당해 마약을 제조했다는 일본인, 그런 유우시를 사랑한 일본 공안경찰... 넷플릭스야 군침 흘리고 달려들겠지만 이게 밖으로 새어 나가는 순간 난리가 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직감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지라는 배웅을 받고 나왔다. 문이 닫히기 전 나는 빼꼼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저 그런데 박실장이 유우시한테 뜯어간 칠백만 엔 그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랬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슬리퍼에 이마를 얻어맞았다. 빠큐를 오늘만 몇 번이나 목격한지 모르겠다. 후배는 차마 입에 옮기기도 무서운 협박 문자를 세 통이나 내게 보내왔다. 그러나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택시를 잡았다. 시트에 몸을 묻고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살기 좋은 도시, 서울. 쾌적한 주거 환경, 높은 주거 만족도, 우수한 자연·문화·교통 인프라 어쩌고저쩌고. 익숙한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라디오에서는 아나운서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오늘의 주요 뉴스를 읊었다. 서울 도심과 인근 야산을 거점으로 대규모 제조 공장을 운영해 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압수한 마약의 양이 수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규모라고 밝혔습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여태껏 전전했던 모텔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으리으리한 호텔이었다. 공로를 인정받아 위에서 잡아준 비싼 숙소였다. 나는 501호라는 익숙한 숫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었다.

 

"유우시."

 

그리고 의자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는 유우시가 나를 맞이했다. 유우시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중이었다. 환상도 꿈도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꾸깃꾸깃해진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 신청해뒀어."

 

유우시의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증인 보호?"

 

나는 테이블 위에 서류를 내려놨다. 그리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한창 마약 사건에 대해 떠들어대던 아나운서의 얼굴이 사라지고 웬 아련한 로맨스 영화로 화면이 바뀌었다.

 

박실장은 유우시가 한국으로 도망친 이유가 야쿠자들의 협박 때문이라고 했다. 유우시의 애인인 내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고 협박한 게 틀림없었다. 유우시가 도망친 건 나를 위해서였다. 내 돈 칠백만 엔을 훔친 것도 아예 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였고. 전부 나중에라도 야쿠자가 나를 걸고넘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내 말을 들은 후배는 제발 소설 그만 쓰고 정신 좀 차리라고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하지만 너는 유우시를 모르잖아. 넌 걔가 일본 최악 마약왕의 사생아라고 생각하지. 순도 99% 밀키웨이를 만들어내는 범죄자 새끼라고만 보지. 걔가 얼마나 외로운 얼굴을 하고 시커먼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는지 못 봤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안 되는 얼굴이 나를 마주하고 허물어지며 환하게 웃는 걸 못 봤잖아. 평생 씹새끼들 밑에서 마약이나 만들며 살았는데. 나를 살려준다면 다시 그 지옥으로 기어 들어가겠다고 다짐하는 걸 못 들었잖아...

 

나는 뒤에서 유우시를 꽉 끌어안았다. 아주 홀쭉해진 옆구리와 배를 더듬었다. 살가죽을 손으로 훑다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일본으로 돌아가도 내가 영원히 너를 보호해주겠다는 뜻이야."

 

유우시가 중얼거렸다.

 

"영원히?"

 

비싼 호텔 어메니티 향들 속 유우시의 체향을 찾아냈다. 유우시가 몸을 비틀었다.

 

"그치만 나는 마약이나 만들던 범죄자고..."

 

리쿠는 경찰인데. 유우시가 물었다.

 

"아직도 나를 못 버리겠어?"

 

그의 말이 내 고막을 쿡쿡 찔렀다. 나는 유우시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팔에 힘을 주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창밖으로 도심의 야경이 번쩍였다. 영원히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바다 건너 외국의 대도시다. 별 하나 뜨지 않고 오로지 인공위성만이 빛을 뿜어내는 이 새카맣고도 환한 대도시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씹쌔끼들을 마주했지만. 그리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도시 역시 씹새끼들이 한가득이겠지만. 너와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어느 씹새끼로 불리겠지만.

 

"유우시. 내가 뭐라고 그랬어."

 

유우시 괴롭히는 놈들은 내가 다 잡아가려고 경찰이 된 거라고 했잖아. 몇 년 전 유우시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꿈에 나왔던 탓인지 마치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유우시가 받아쳤다.

 

"리쿠, 나 만나기 전부터 이미 경찰이었잖아."

 

몸을 틀어 유우시의 앞에 서 그 위에 올라탔다. 깔아뭉갤 듯 끌어안으며 웅얼댔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야."

 

유우시가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숨소리를 한 번 토해내고는 대답했다.

 

"나도 사랑해."

 

마침내 유우시의 입에서 튀어나온 항복에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칠백만 엔 그깟 거 뭐 다시 모아봐야지. 영영 엎어진 물에서 헤엄을 치더라도, 뭐...

 

얘만 내 옆에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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